대형 플랜트 건설을 수행하는 F사는 연간 수십 건의 하도급 입찰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특정 공종에서 낙찰가가 예정가격에 근접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경쟁 입찰임에도 업체 간 가격 차이가 극히 미미한 사례가 누적되었습니다. "경쟁이 형식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진단의 시작이었습니다.
F사의 하도급 입찰은 현장설명회 참여 → 견적서 제출 → 가격 협상 → 낙찰의 순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개별 입찰 건만 보면 모두 절차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건을 함께 놓고 보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문 진단팀은 입찰 데이터의 통계 분석과 디지털 흔적 분석을 병행했습니다.
다년간의 입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특정 3개 업체(G사, H사, I사)가 동일한 입찰에 반복적으로 참여하면서 순번제로 낙찰받는 패턴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번엔 G사, 다음엔 H사, 그 다음엔 I사 — 마치 미리 정해놓은 순서처럼.
결정적인 증거는 디지털 흔적에서 나왔습니다. 세 업체의 입찰서가 동일한 접속 위치에서 30분 이내에 순차적으로 제출된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한 장소에서 한 사람이 세 업체의 입찰을 모두 처리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F사 내부 구매 담당자가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담당자가 견적서 원본을 직접 작성하여 업체에 전달하고, 입찰 내역을 사후 수정한 시스템 로그까지 확인되었습니다.
경쟁 입찰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을 경우 절감 가능한 금액은 약 12억 원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입찰 절차가 있다"는 것과 "실질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형식적으로는 모든 절차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절차 뒤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들여다보니, 경쟁은 연극에 불과했습니다.
개별 입찰 건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방식으로는 이런 구조적 담합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다년간의 입찰 패턴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디지털 흔적을 교차 검증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F사는 진단 이후 전자입찰 시스템에 접속 위치 검증 기능을 추가하고, 입찰 참여 업체 조합의 반복 패턴을 자동으로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입찰 결과가 항상 "적정 범위"에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의심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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